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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사람들
단상 | 10/10/17 05:00
스리슬쩍 자신의 대단함을 조심스럽게 뱉어내는 모습을 어느 정도 받아주고 있자니 계속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이 딱히 불쾌하다거나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어설픈 기운마저 들어서 젊음의 치기로 귀엽게 봐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딱 떠오르는 지난 주 나 또한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스스로 발견한 인생의 진리인냥 너절하게 풀어놓지 않았나.

우선 순위를 구별하지 못하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내 기분이 평안할 때는 그러려니 넘어가기도 하고 그냥 괜히 쏘아붙이고 싶은 기분이 들 때는 어쩌구 저쩌구 하고 싶은 소리 다 하면서 살고 있지만 나야말로 우선 순위 구분이 심하게 안 될 때가 있는 인간으로 치자면 순위권이다.

처자식 밥 굶을 일 없으면 절대 안 팔겠다고 다짐했던 악기들을 장터에 올리고 있으니 연락이 온다. 올드 펜더치고는 가격이 싸긴 했지. 시세같은 건 보지도 않고 내가 산 가격 그대로 올렸다. 어쨌거나 문자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대뜸 벨이 울린 것부터가 심상찮았지만 받아드니 목소리의 톤은 나이가 좀 있을 것이고 억양 또한 사회에서 심하게 굴러 둥글둥글해진 조약돌을 보는 듯하다. 빤딱빤딱 기름도 칠해져 있는 것 같고. 교환도 절충도 사양한다고 올렸던 내용과 딱딱한 나의 말투에 먼저 한풀 수그리고 들어오나 싶더니 곧바로 자신의 사정을 언급하면서 만날 시간을 조정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악기에 대한 세부적인 질문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중엔 내 편의를 과도하게 봐 주고 싶은 의향이 있는 것 같길래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다고 딱 잘라 사양했더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라는 단서까지 붙여가며 헤실거린다. 아, 잘못 걸렸구나. 하지만 난 악기만 팔고 돈만 받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돈이 퍼런 돈이든 뻘건 돈이든 꺼먼 돈이든. 예약 된 상태가 되고 10분 정도 후에 다시 전화가 와서 또 무슨 사정 설명을 하더니 예약을 취소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락은 또 내일 한다네. 아저씨 내일 연락 올 때쯤이면 아마 다른 사람이 사 갈 겁니다. 사 갔으면 좋겠네요.

다른 사람에게 연락이 왔는데 아까보단 순박한 사람같다. 음악을 다시 시작했다고 구성품을 물어보며 케이스나 스트랩 렌치 등을 주었으면 하고 이야기를 건네왔는데 있는 것만 다 드리겠다고 했다.

인간은 정말 단순하게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고자 움직인다. 나도, 그들도. 가끔은 그냥 '나 이런 걸 원하니까 이렇게 행동한다'라고 솔직하게 다 알 수 있었으면 하지만... 나 또한 그렇게 순순히 다 보이는 건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당신네들도 그러니까 한 겹 두 겹 그렇게 켜켜이 누더기를 두른 거겠지.

지금 자도 세 시간이고 아마 나는 두 시간 반밖에 자지 못할 것이다. 신음 소리를 내며 일어나 탄수화물을 밀어넣고 도착한 합주실에서는 노랗게 빛나는 진공관과 함께 한껏 아드레날린을 뿜으며 너와의 마지막 시간을 연소할 것이다.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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