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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움
단상 |
11/01/1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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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학생 회관 식당은 어린 중고등학생들로 넘쳐난다. 학기 중처럼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 그들 사이에 낄 자리를 하나 찾는 것도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2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밥을 먹은 후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문구점으로 갔는데 거기 또한 이십여명 가량의 중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심 끝에 고른 정리 파일과 수첩을 들고 나와 문구점 앞의 난간에 가방을 올려 놓고 물건들을 넣고 있던 중 학생들의 무리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저기요~ 혹시 인터뷰요오 잠깐 해 주실 수 있나요?" 열 명 가량의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혹시 그래야 하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냥 한 번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을 하고 그 자리에서 질문에 답했다. 소속과 학년, 최소한의 개인 정보를 묻는 첫 번째 질문 이후에 이어지는 물음은 '서울대생으로서 언제 가장 자랑스럽나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랑스러움? 남에게 드러내어 뽐낼 만한 곳? 사실 학교 간판이라는 것 자체가 으시대자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구멍내 놓은 학점을 메꾸자고 아직도 허덕이고 있는 초고학번이 무슨 낯짝으로 그럴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사회에서 그런 행위는 금기에 가깝다.
'서울대생'이라는 딱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에만 주목하게 하며 다른 일체의 것들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공연에서 보컬 녀석이 장난삼아 한 멘트에서 내가 서울대생임이 밝혀지자 내게 쏘아지던 몇 개의 시선들. 거기에는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극도의 불쾌감이 서려있었다. 젠장, 난 아무 소리도 안 했다고. 내가 칼이라도 뽑아들고 당신네들을 위협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야.
생각 끝에 나는 "친구들이랑 이야기 할 때 다들 생각이 많아서 좋아요."라는 희멀건 쌀죽같은 대답을 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라고 어떤 학생이 물었을 때 옆에 있던 학생이 "친구들한테 자랑할 수 있어야 좋단 뜻이야, 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뇨 아뇨 같은 학교 친구들 이야기예요."라고 부연 설명을 해야했다. 자랑스럽다기 보다는 그냥 내게 좋은 점을 이야기한 것 뿐이긴 하다.
도서관에 책 많아서 자랑스럽다고 할 걸 그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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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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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el000 11/01/13 15:56 R X
아무래도 학교가 자랑스러웠던 적은 입학하기 전밖에 없었던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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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 11/01/23 01:18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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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하기도 전에 어떻게 자랑스러울 수가 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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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k 11/01/13 16:23 R X
학교가 자랑스러운 일은 학교안에 버스가 다닌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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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 11/01/23 01:19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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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도 좋고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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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kh 11/01/13 17:11 R X
학비가 사립에 비해 적어서 자랑스럽다고 하지 그랬어...(...)
사실 난 우리학교가 학비 적은 게 정말 자랑이었엌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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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 11/01/23 01:19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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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학비가 적지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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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 11/01/14 02:37 R X
'서울대생'이라는 딱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에만 주목하게 하며 다른 일체의 것들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이거 캐공감...학교에 있을 땐 몰랐는데 학교를 떠나 보니 그렇더라고. 나쁜 건 아니니 기분나빠 하기도 그렇고...
어쨌든, 네놈은 어린 학생들에게 입학한 이후 월드컵이 두 번 열리도록 졸업 안하고 뻐팅기는 사람도 있다는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나저나 나도 졸업해야 할 텐데T_T 난 햇수로는 올림픽 세번이 되겠네-_-;
덧. 학교 친구들이 다들 괜찮은가 보구나. 부럽군. 내 경험상으론 똑똑하지만 머리 빈 놈들 천지였던 거 같은데... 하긴 그런 녀석들과는 친구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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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 11/01/23 01:20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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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말을 그렇게 써 놓으니 올림픽 개최 term이 어느 정도인지 순간 헷갈렸다 이 나쁜 놈아 ㅋㅋㅋㅋㅋㅋㅋ
사실 학교 친구들이 다 괜찮은지 다 또라이인지 좀 헷갈리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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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11/01/14 17:59 R X
서울대생이라는 타이틀이 자랑스러운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자랑스러워지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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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 11/01/23 01:21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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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쪽팔릴 때가 더...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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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 11/01/14 18:57 R X
이건 내가 괴상한건지 아닐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속한 어떤 팀같이 서로 모두 알고 같이 무언가를 하는 직접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학교, 고향, 국가 등등 같은 간접적인 공동체의 경우
난 그 공동체가 자랑스럽다라는 감정 자체가 무언지 이해를 못하겠음.
뭐 ㅄ 같다 이런 건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그런 감정이 납득이 잘...
아마 소속감 같은게 난 없는 놈이라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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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 11/01/23 01:21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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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확실히 예전부터 좀 그랬지
그렇다고 니가 공동체 생활을 못한 건 또 아니긴 했다만...
난 니가 내 블로그에 리플 남길 때마다 흠칫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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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릉 11/01/15 19:50 R X
"너 같은 애들이 인터뷰하러 올 때 자랑스럽단다. 내가 너보다 똑똑한 거 같잖니?"
"내가 누군가에겐 엄마 친구 아들임을 알았을 때 자랑스럽단다. 효도한 거 같잖니?"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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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 11/01/23 01:21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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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하하하하하핳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니가 자랑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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