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 무대입니다. 지금까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이 영화 역시 또다른 밴드 영화 '소라닌'과 마찬가지로 드라이브 걸린 전자 기타의 소리가 처음부터 귀의 문을 두드린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음악에의 꿈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밴드 활동에 전념했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나가고 자신 또한 벽에 부딪치며 아끼던 친구들마저 변해버린 모습에 깊은 상심을 느끼는 주인공. 예상 범위 안의 줄거리다.
지금도 회자되는 이야기로 이 영화에는 박해일, 류승범, 황정민이 나온다. 류승범은 이 영화가 두 번째 장편 영화였고 황정민은 이 영화로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고(팬클럽이 생기게 된 영화라고... 그리고 스토커도) 본인 또한 이 영화가 자기 연기 인생의 한 방이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정민은 평소에는 약간 나사빠진 강수를 연기하는데, 친구에게 여자를 뺏기고 악마가 씌인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 상실감에 약을 하며 음악도 지겹고 여자도 돈도 다 싫다고 읊조리는 모습이 매우 강렬하다. 개봉된지 10년이 지난 영화인데 지금 우리 나라 영화계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연기자들이 한꺼번에 출연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인공 '성우'역을 맡은 이얼의 연기가 돋보인다. 주인공이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캐릭터 자체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성격이 곧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 이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현실을 보자면 매우 어렵고 우울하지만 어느 선을 벗어나지는 않는다(감정이 고조되기 전에 장면을 전환하는 연출 탓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아가씨들과 싸장님들이 모두 홀딱 옷을 벗고 테이블로 올라가 춤을 추던 씬. 뒤에서 노래방 반주에 맞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성우에게 '너도 옷 벗어야지? 라며 닦달하는 한 싸장님의 시비. 노래방 반주 배경으로 해변을 뛰노는 여인들의 모습이 브라운관에 나오고, 그 위로 마지못해 옷을 벗고 계속 '아파트'를 부르는 나체가 된 성우의 모습이 오버랩된 컷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 때 성우가 어린 시절 넷이서 해변을 뛰놀던 때를 생각했을지 아파트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인희를 생각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테이블 위에서 허연 육체들이 뛰노는 모습은 코미디 그 자체. 정석이 칼을 맞고 온 팔에 피를 흘리고 오는 모습 또한 우습기만 하다.
마지막 장면은 그것이 실제였는지 누군가의 소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포스터에도 써져 있지만 그냥 그저 살아갈 뿐이 아닌가 하는 먹먹함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는 너무나 부드러운 노래였다.
# 트위터의 @howsthatmovie님의 리트윗 덕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있었던 '작가를 만나다' 기획, 개봉 10주년 기념 상영으로 이 영화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임순례 감독님이 얼마 전 빙판길에서 부상을 당하셔서 2개월 간 입원을 하셔야 한다고...
여하간 어제는 여러 가지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