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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3
일기 | 10/06/24 00:44
이번 학기 출석부를 보니까 이 수업을 듣는 학생이 구십구명이에요 구십구명. 10학번부터 02학번까지 다양한 학번이 존재하고 있어요. 으엑~ 하는 소리가 강의실 오른쪽 뒷편에서 길게 울렸다. 마치 길에 무질서하게 뿌려져 있는 동물의 배설물을 보는 듯한 그런 소리였다. 아니 아가씨 그렇다고 그런 소릴 낼 것까진 없잖소 차라리 그냥 웃으라고 비웃음을, 그 편이 훨씬 낫겠구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자신은 02학번은 아니니까 아직은 괜찮다고 안도했다. 사실 거기엔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지난 학기 다른 강좌에서는 최고학번인 경우가 최소 한 번 이상 있었고 무조건 내년 1학기는 다녀야 했기 때문에 내년에는 위험할 가능성이 이번보다 훨씬 높았다. 조기 졸업 따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못해 통치자가 내일 아침 방송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을 기대하는 쪽이 나아보였다.

교수는 그렇게 나머지 부연설명을 마치고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조상우. 네. 전기공학부 조상우 맞나? 네 맞습니다. 이번 학기 수업에는 동명이인이 있네요. 그리고 한참 출석을 부르다 중간에 조상우라는 이름이 또 등장했다. 역시 학과를 확인했다. 이 두 사람은 이런 어줍잖은 이유로 교수에게 얼굴을 각인시켰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 운이 좋아, 이런 이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아직 살면서 몇 번 못 봤거든. 그러니 강좌에서 동명이인을 만날 일도 없겠지. 그 말은 사실이기도 사실이 아니기도 했다. 남자의 과에는 성마저 똑같은 사람이 존재했고 어느 날의 생일 알림 때 누군가의 착각으로 잘못된 생일 축하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재밌긴 했지만.

정희동. 네. 혹시 복학생인가? 교수님 대체 왜 출석을 부르다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죠? 당연히 다음 사람의 출석을 확인할 차례가 아닌가요? 하지만 교수님의 질문을 무시할 수도 어물쩡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갈뻔 했지만 이 강좌는 구십구명이 듣는 강좌다 구십구명. 아 나 빼면 구십팔명이지 어쨌든. 대답이 튀어나오려다 목구멍에서 한 번 걸리고 위아래로 맞닿은 이에서 또 한 번 걸려 대답인지 혼잣말인지 잘 알 수 없는, 하지만 긍정의 의미라 볼 수 있는 희미한 소리를 냈다. 지난 학기 연구 주제에 말이죠, 복학생의 행복도라는 주제가 있었어요. 군복무 경험이 개인의 행복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그런 주제였습니다. 수강생들의 작은 웃음 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렸다. 아니 교수님 제 출석 부르다 마시고 그런 말씀하시면 사람들이 절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니 뭐 복학생인 건 좋아요 그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러시면 사람들이 절 02학번으로 볼 수도 있다고요, 그건 참을 수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큰 소리로 전 02학번이 아녜요 03입니다라고 떠벌릴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이 대형강의장이 폭소로 가득찰 것이었고 아마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오늘 하루 중 가장 크게 웃을 일이 되어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남들을 웃긴다는 건 꽤 흥미진진한 일이지만 때로는 자신을 발가벗기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쳤기에 혼자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금요일에 있을 조 정하기에는 사람들이 기억 잘 해주겠네. 어차피 자기 소개하면서 학번 다 말하니까 오늘 일이 별로 상관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사람들은 별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일을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 처리 된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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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opia 10/06/24 00:50 R X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복학 후의 제 모습이라고 상상하니 눈에 땀이 나네요 ㅠㅠ
bassist. 10/07/03 01:45 X
난 앞 뒤로 다른 사람들보다 회사를 다닌 기간이 훨씬 더 길어서 넌 빨리 하고 오면 나만큼 심하진 않을 거야 ㅋㅋ
정길 10/06/24 08:56 R X
헐 02 ... ㅠㅠㅠㅠㅠㅠ
bassist. 10/07/03 01:45 X
오늘 조원 소개 때 봤는데 우여곡절 사연이 있는 분이시더군요... 저는 우여곡절도 없는데 03 (...............)
erniea 10/06/24 10:02 R X
아니 이럴때는 논픽션이라고 하는거지 .. 단어를 틀렸다
bassist. 10/07/03 01:47 X
픽션 맞음
lapiz 10/06/24 10:23 R X
음... "복학생의 행복도라는 주제가 있었어요. 군복무 경험이 개인의 행복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그런 주제" 얘기 할때...

"저, 군대 안다녀왔는데요~" 라고 말하기
bassist. 10/07/03 01:47 X
뭐 아주 안 다녀온 건 아니긴 하죠
안 다녀왔다고 하면 그것도 충격과 공포네요 ㄲㄲㄲ
10/06/24 18:06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bassist. 10/07/03 01:47 X
으아아 아악!
Dep 10/06/25 12:12 R X
SBS 기자 정희돈이라는 분도 계시잖아....

bassist. 10/07/03 01:47 X
그건 이명이인이고 ...
withonion 10/06/27 10:41 R X
너(가명) 생각보다 힘들게 사는구나
bassist. 10/07/03 01:49 X
아으 그래도 산다는 실감이 나 ㅋㅋㅋ 나름대로 재밌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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