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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변
일기 | 11/08/19 21:05
1.
곧 공연인지라 최근 합주 일정이 토일월화목토일이 되기도 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매일 15kg 정도 되는 장비들을 지고 다니자니 어깨근육도 땡기고 그렇다.
그 날도 마찬가지로 집에서 나와 가까운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마을버스에 올라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타의 노새처럼 기타를 등에 메고 무거운 페달 보드는 바닥에 내려 놓고 좌석 등받이에 붙은 손잡이를 잡고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등산객이 매우 많다. 평일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막 등산을 하고 내려온 차림의 아주머니 두 분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 공간도 많은데 굳이 내 옆에 딱 붙어서 몸으로 밀어내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곧 죽어도 출구쪽에 서야겠다는 심보의 발로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나를 민다. 내가 잡고 있는 등받이 손잡이가 탐이 났던 모양이다. 손을 떼고 비켰더니 이제는 그 손잡이를 잡기 편안한 위치로 올 생각인지 계속 들이밀었다. 부아가 치밀어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버스는 정류장에 멈췄다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여고 앞 정류장에 멈췄을 때도 그 아줌마는 계속 밀고 있었다. 걍 비키고 신경 끄자고 생각해서 비켜줬는데 아줌마가 어찌나 세게 밀고 있었는지 내가 슬쩍 비키는 것만으로 헛걸음질을 하며 비틀거리다 내 발을 밟았다.
"아 씨발 진짜"
한참을 노려보니 아줌마가 내릴 때까지 얌전히 있었다.

2.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옆에 붙은 휴지통으로 가려는데 뒤에 있는 할아버지가 비키질 않는다. 그래서 좀 물러나달라는 뜻에서 가만히 서 있었더니 나를 밀고 세면대로 간다.
"아니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왜 밀고 그러십니까?"
그러더니 자기가 메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를 가리키며 그게 부딪치니까 밀었댄다.
"아니 그러면 뒤로 물러나면 되잖습니까 그래야 제가 나가죠"
노친네가 그냥 손을 씻고 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께서 연신 미안하다고 나한테 굽신댔다.

3.
여자: 혹시 교보문고 어딘지 아세요?
나: 네 이쪽 길로 5분... 정도 올라가시면 나와요.
여자: 혹시 광화문 매장보다 큰가요?
나: 음... 아니 그렇진 않을 거예요.
여자: 아 그럼 어떡하지? (라면서 옆 일행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 그러게 어쩌지?
여자: 아 그런데 인상이 너무 무서우셔서요. (갑자기 손을 덥석 잡는다)
나: 아이 씨이-발
질문에 호의로 답했더니 이런 뒷통수라니 존나 좆같은 상쾌함이 온몸을 덮었다. 내가 듣던 음악이 끊어진 것도 짜증나고 그 몇 초의 시간조차도 아까웠다.

4.
혹시 법대가는 버스가 뭐요?
아 5513 이거 타시고 정문 지나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아 혹시 이중에 법대가는 친구는 없나?
저는 안 갑니다
그럼 앞의 친구는?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학생 몇 학년인가?
4학년입니다
우리 아들이 법대 4학년인데... 무슨 단대 다니나?
공대입니다
(버스가 옴)
혹시 무슨 과인가?
컴퓨터공학부입니다
(일순간 눈이 반짝임)
(버스에 탔더니 내 뒤에 앉았다)
우리 아들이 리니지투 뮤에 빠져가지고... 학교 수업을 안 들어
아 네
과에서도 그런 거 가르치나?
뭐 가르치기도 하고 안 가르치기도 합니다
허허 아들래미가 서른다섯이 되도록 아직 졸업을 안 했어 맨날 컴퓨터만 하고 뭐라고 혼내면 집에서 나가서 한 이삼주 있다가 들어오고 그 과에도 이런 학생들 좀 있나?
저는 잘 모릅니다
다른 애들은 연대법대가고 잘 하고 있는데 이놈이 말을 안 들어 그 바보상자에 맨날 붙어가지고 오늘도 내가 지금 지도교수 만나서 얘기를 좀 해보려고 가는 거거든
그러시군요
오늘이 뭐라더라 무슨 신청 마지막날이라서 오늘까지 안 하면 안 되는데 이 놈이 또 집을 나가서 안 들어와 그래서 내가 가는 거야

재수 삼수 사수할 때도 똑같이 애먹이더니 아직도 서른 다섯 먹고 그래 공대 가겠다는 애를 내가 법대를 보내놨더니 그런 모양이야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 학생 군대는 어디서 보냈나?
현역 안 갔습니다
우리 아들도 공익이야 해병대 붙은 걸 뭐 국방부장관한테 얘기해서 공익을 갔다는데 이놈을 그 때 해병대에 보냈어야 했어 이놈 때문에 내가 공무원하던 것도 그만두고 출마도 포기하고 사업도 포기하고 오늘 일도 다 포기하고 지금 학교 가는구먼
아들래미를 포기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이 모든 게 24시간 안에 일어났음 나는 참 복도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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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핀드 11/08/20 09:26 R X
이보시게... 자네도 요즘 일진이 아니좋구먼. 힘내시게 ;ㅅ;

* 그런데 마지막 이야기는 정말 구라삘이 충만 -_-;
bassist. 11/08/23 08:04 X
꼭 일진이 나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ㅋㅋ
마지막 얘기가 사실이라면 정말 수소문해서 누군지 알고 싶을 정도...
smallpotato 11/08/21 00:16 R X
읽다가 입에서 저절로 `존나 미치겠네'

아무래도 너의 인상이 덜 더러워서 그런것 같다.
앞으로 감히 너에게 그런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더 더러운 인상이 되게 내가 옆에서 도와주마.

근데 3번은 이해가 안된다. 갑자기 손은 왜 덥썩 잡은거냐. 도를 아십니까 or 기독전도냐? 어쩌지 하는거는 널 끌고가야 하는데 인상이 무서워서 끌고가기 무섭다는건가 -_-;;;
bassist. 11/08/23 08:05 X
존나 미치겠넼ㅋㅋㅋㅋㅋㅋ
3번은 나도 이해가 안 됨... 그러면 뭔가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아릉 11/08/21 14:07 R X
3번 ㅋㅋ
나 요즘도 간혹 저런 사람들이랑 그냥 이야기해보고 그러는데
얼마전엔 얘기를 하다가 나보고 여자친구 없냐는 거야
없다고 했지. 근데 한다는 소리가
'그래, 없죠. 잘했네. 사귀었으면 여자가 @&@%#$@$'
하면서 악담을 함. 아니 이 인간이?
bassist. 11/08/23 08:05 X
으악 여자친구 드립ㅋㅋㅋㅋㅋㅋ
남자친구가 있다고 그러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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