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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채널
일기 | 11/12/03 18:57
두서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몇 년 전에 "irc를 하는 건 외로워서인 것 같아요"라는 한마디를 한 적이 있었다. 입학 전부터 쓰고 있었던 irc를 입학 이후에 과 사람들과 함께 채널을 만들어 이용하게 되면서 발견했던 것은 사용자의 대부분이 기숙사에 살거나 하숙 및 자취를 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먼저 든 생각은 위에서 말했던 한마디와 같이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떠들 수 있는 irc를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서울에 살면서 가족과 함께 지내면 밤 늦게 컴퓨터를 쓰기가 자유롭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하루 종일, 심지어 외출할 때도 컴퓨터를 켜 놓기가 어려워서 쓰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irc에 들어와서 누가 들어줄지도 모르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메신저 등을 사용하면서 필요한 대화는 모두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특정 채널로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추상적인 상위의 담론이 오갈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말하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 요인을 일단 '외로움'으로 한정시키로 한다. 그 이유는 다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irc를 보면서도 외로워하고 괴로워 한다. 그 이유는 부작용과도 같다. 내가 한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며, 내가 없어도 오가는 대화를 보며 소외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후자는 '내가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가더라'를 느끼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

사람들이 채널에서 irc를 하는 행위에 대해서 (주로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시간을 버리고 있는 잉여짓이라는 자각을 하면서 그것에 대해 괴로워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irc가 1차적인 원인이 아니라 그것은 외로움의 해소이든 표현 욕구의 배출이든 개드립 등의 말초적이고 순간적인 자극을 주는 것이든, 이용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왜 자신이 이것을 쓰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얻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언젠가부터 나는 그런 종류의 외로움을 거의 느끼지 않게 되었다. 고양이 때문인가하는 생각도 해 봤는데 그게 이유의 전부는 또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살아있는 유기체가 주는 존재감과 온기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또 굉장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 '와/과'를 사용해서 단어를 나열할 때 한글 단어와 영문 단어를 쓰면 의미 번역 과정이 들어가서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렇게 쓰지 않으려고 신경쓰는 편인데, '채널'이라는 영단어를 대체할만한 한글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사전에 등재된 뜻인 '의사소통 경로 [수단]'이 가장 들어맞는데 한 단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길어져 제목의 간결함이 사라진다. 무슨 단어를 쓰면 좋을까? 그냥 '외로움과 의사 소통 수단'이라고 쓰면 더 나았을까? 오늘도 이런 쓸데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고민을 하며 마찬가지로 쓸데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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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ing 11/12/07 07:59 R X
대화라는걸 외교수단 정도라고 생각하면 외교실패에 대한 실망감이 외로움쯤 아닐까.
진짜 FTA가 필요한건 우리들 일지도..
bassist. 11/12/08 05:14 X
외교는 어떤 것을 전달하고 또 받기도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그 기능 외에도 다른 것들이 있으니 외교에 비유하면 나머지 의미들이 상실될 것 같다.

FTA 드립은 맘에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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