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학생 회관 식당은 어린 중고등학생들로 넘쳐난다. 학기 중처럼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 그들 사이에 낄 자리를 하나 찾는 것도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2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밥을 먹은 후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문구점으로 갔는데 거기 또한 이십여명 가량의 중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심 끝에 고른 정리 파일과 수첩을 들고 나와 문구점 앞의 난간에 가방을 올려 놓고 물건들을 넣고 있던 중 학생들의 무리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저기요~ 혹시 인터뷰요오 잠깐 해 주실 수 있나요?" 열 명 가량의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혹시 그래야 하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냥 한 번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을 하고 그 자리에서 질문에 답했다. 소속과 학년, 최소한의 개인 정보를 묻는 첫 번째 질문 이후에 이어지는 물음은 '서울대생으로서 언제 가장 자랑스럽나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랑스러움? 남에게 드러내어 뽐낼 만한 곳? 사실 학교 간판이라는 것 자체가 으시대자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구멍내 놓은 학점을 메꾸자고 아직도 허덕이고 있는 초고학번이 무슨 낯짝으로 그럴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사회에서 그런 행위는 금기에 가깝다.
'서울대생'이라는 딱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에만 주목하게 하며 다른 일체의 것들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공연에서 보컬 녀석이 장난삼아 한 멘트에서 내가 서울대생임이 밝혀지자 내게 쏘아지던 몇 개의 시선들. 거기에는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극도의 불쾌감이 서려있었다. 젠장, 난 아무 소리도 안 했다고. 내가 칼이라도 뽑아들고 당신네들을 위협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야.
생각 끝에 나는 "친구들이랑 이야기 할 때 다들 생각이 많아서 좋아요."라는 희멀건 쌀죽같은 대답을 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라고 어떤 학생이 물었을 때 옆에 있던 학생이 "친구들한테 자랑할 수 있어야 좋단 뜻이야, 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뇨 아뇨 같은 학교 친구들 이야기예요."라고 부연 설명을 해야했다. 자랑스럽다기 보다는 그냥 내게 좋은 점을 이야기한 것 뿐이긴 하다.
도서관에 책 많아서 자랑스럽다고 할 걸 그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