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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빗질
일기 |
11/07/2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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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주 정도 매일 고양이들에게 빗질을 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 행위가 쓰다듬어주는 것과 비슷해서 그런지 매번 얼굴을 집 안의 각종 모서리에 갖다 박고 땅바닥에 뒹굴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놈들이 이걸 그냥 내가 놀아주는 건 줄 아는건가 싶어서 오늘부터는 몸을 위에서 눌러서 가만히 있게 한 다음에 빗질을 해 주면서 말했다.
"이건 내가 너희들이랑 놀아주는 게 아니라 털 빗어주는 거야. 너네 기분 좋게 하려고 놀아주는 게 아니란 말이다."
사실 얘네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놀아주는 거든 빗질을 해주든 무슨 상관이냐 싶긴 하지만 두 행위는 본질적으로 좀 다른 면이 있다. 가령 화가 났을 때는 놀아주진 않는다. 이건 나도 그렇고 얘네들도 놀 기분이 되었을 때 서로 노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화가 났다고 밥과 물을 안 챙겨주진 않는다(물론 이걸로 의사 표현을 할 때도 가끔 있긴 하다). 빗질은 후자인 셈이다. 화장실 치워주는 것도 그렇고. 고양이들에 대한 의무를 행하고 있는 거지 서로 기분 좋다고 노는 건 아니다. 물론 놀아주는 것도 의무라면 의무일 수 있는데, 그건 쌍방이 그럴 기분이 들었을 때 가능한 한 단계 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양갱은 말을 잘 들었는데 쿠크년은 진짜 말 안 듣고 내가 빗질 해준다니까 머리를 책장이고 박스에다 갖다 박았다. 모서리 없는 넓은 곳으로 몸을 끌어서 데려다 놓으니까 배를 발랑 내 놓고 '얼른 쓰다듬어줘'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놀아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너 빗질해주려고 그러는 거니까 얼른 일어나서 앉으라고 해도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말만 해서 듣질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목 뒤를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데 발버둥을 친다. 좀 할퀴었다. 못 알아들어도 계속 말을 들려주며 조금씩 빗어주니까 좀 얌전해져서 어느 정도 빗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말을 계속 하고 있으면 어조로 같은 걸로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
자 이제 끝났어. 이제 놀아줄게. 빗을 치우고 쓰다듬어서 남은 털을 떼어내고 배도 긁어줬다. 5년 넘게 살면서 든 버릇이 절대로 쉽게 고쳐지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안 고쳐질 수도 있다. 내 습관 고치기도 힘든데 말 안 통하는 얘네들은 더하겠지. 그래도 요즘은 고양이 빗질 해 줄 시간 정도는 나서 참 다행이다. 계속 이 정도의 여유가 삶에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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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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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potato 11/07/27 04:39 R X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이 문장은 함부로 입에 담을것이 아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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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 11/07/31 19:39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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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치사하게 '~것 같다'라고 써 놓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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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ira 11/08/02 02:22 R X
"계속 이 정도의 여유가 삶에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
이... 이거슨 사망플래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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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 11/08/16 08:01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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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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