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14
15:25 음악을 이런 식으로 만드는 놈들을 처음 봤다. Muse. 'Hyper Music' 들어보면 베이스가 멜로디를 연주하고 기타가 단순한 코드 진행으로 화음을 맞춰주고 있다. 보통은 그 반대인지 않은가. 따라서 자연히 베이스 소리가 무지 크다. 이 노래에서는 기타 소리보다 더 크다. 기타 소리는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잘 안 들릴 정도다. 뭔가 존나 웃긴다. 스타일은 너바나나 스매싱펌킨즈같은 그런지풍인데 거기에 영국적 감성이 씌워져 있다. 굉장하군...
이 노래가 뮤즈 노래 중에 가장 폭발적인 노래가 아닐까? 위에서 써 놨듯이 진짜 멋진 베이스 라인을 가지고 있는 노래다. 흔히들 뮤즈 베이스 하면 Hysteria를 떠올리지만, 난 이 노래가 먼저 생각난다. Muscle Museum의 위풍당당한 베이스도 좋고 Cave, Uno 또한 뮤즈 베이스의 진수라고 생각한다. Darkshines도 마찬가지고.
위 박스 안의 내용은 2002년 수능이 끝난 고2 겨울 때부터 나의 수능날까지 거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쓴 일기 중의 한 부분이다(수능 끝나고도 간헐적으로 쓰긴 했다). 고3 여름 지나면서는 조금 완화된 것 같긴 한데 지금 읽어 보면 전체적으로 중2병에 쩔어 있으며 아는 체를 하고 싶었고 - 난 저 때 너바나는 네버마인드밖에 안 들었고 스매싱 펌킨즈는 몇 곡 듣지도 못했다. 보나마다 어디서 주워들은 소릴 일기장에 적었겠지 - 이 시기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목표를 알 수 없어 불안하고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 때의 나는 스트레스로 소화 불량인 적이 몇 번 있었고 과도하게 신경을 쓰면 곧바로 감기에 걸리는 연례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심하게 코피가 났는데 피가 위장으로 다 넘어가 트림을 하니 피비린내가 났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치우친 감정에 짧은 식견으로 섣부른 판단을 했던 적도 많은 듯하다.
뭐 지금이라고 다를까.
작년 이맘 때 훈련소에서 4주를 보내면서도 내가 제일 처음에 했던 것은 받은 수첩에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기억과 생각 느낌, 그리고 심지어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까지 모두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기록하는 일이었다. 여기에도 적었던 것 같은데 난 그 때 받은 수첩을 다 썼다.
주소록까지 쓴 모습
guide line은 무시하고 최대한 지면을 아끼기 위해 쓸 수 있는 가장 작은 글씨로 썼다. 하지만 결국 수첩이 모자라서 병영 일기에까지 써야했고(처음부터 병영 일기에 쓰지 않은 이유는 휴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훈련장에서 쉴 때도 나는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흙먼지가 묻은 페이지도 좀 있다) 생전 처음 모나미 볼펜을 다 써봤다. 아마 앞으로는 없지 않을까 싶다.
쓰고 나니 내가 뮤즈 음악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지 일기 썼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최근에 뮤즈를 다시 듣고 있고 이 노래 때문에 옛날에 7년 전에 이 노래를 소재로 일기를 썼던 게 생각났고 이렇게 오늘도 일기인지 뭔지 아리송한 걸 적고 있다. 대체 왜 쓰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나중에 돌아보면 재밌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별 생각없이 고정관념처럼 박혀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도 하고 그렇다. 아마 별 일 없는 한 앞으로도 쭉 쓰겠지. 누군가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일기 쓰는 거요."라고 답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