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1시쯤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기 택배 왔는데요, 오늘 출근 안 하셨습니까 ?"라는 것이었다. 출근 안 했다고 그러고 끊었는데, 끊고 나서야 언제 갖다 줍니까 하고 물어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에 갖다 주겠지 싶은 생각과 함께 다시 쓰러져서 잤다.
월요일이 되었다. 오후 내내 아무런 연락도 없길래 6시쯤 전화를 해 보니 깜빡 잊고 차에 안 싣지 않은 것 같다고 그랬다. 그래서 좀 아깝긴 했지만 내일 갖다달라고 했다.
화요일 오전에 전화가 왔다. 웬 전표가 붙어 있는 택배 상자가 방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람이 토요일 오전에 택배를 받은 관리인 아저씨인가 싶어서 아 예 그럼 오후에 좀 갖다 주세요라고 했다. 근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기는 택배 상자를 길에서 주웠다고 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 그럼 택배 기사가 물건 흘려 놓고 지금 다른 사람이 주워서 전표에 쓰여진 번호로 나한테 전화를 했다는 건가 ?
오후가 되어서 그 사람이 회사 앞까지 찾아왔다. 자기는 근처 야식집에서 배달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월요일 저녁에 이걸 주웠다고 그러는 것이었다. 참 고마웠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이었고 줍고서도 모른 척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결국 무사히 내 손에 물건이 들어왔다는 게 참 신기했다. 사실 아직 램을 컴퓨터에 꼽아보진 못해서 물건에 이상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 상황에서 나는 대한통운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을까 ? 사실 내가 물건을 수령했다는 사인을 한 전표 따위는 대한통운에 없기 때문에 '물건 못 받았소'라고 잡아떼기만 하면 전적으로 대한통운의 과실이긴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았다. 월요일에 가져다 주지 않은 책임으로 전화비 정도는 청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별로 위와 같이 굴기는 싫다. 만약 내가 위와 같이 물건 못 받았다고 굴었다고 했을 때, 택배 기사와 그 배달부 아저씨가 짜고 -_- 가게 매상을 올리기 위해서 위와 같은 행각을 저질렀다고 실토했을 때는 어떻게 될까 ? '물건을 못 받았다'라는 나의 말은 거짓일까 ? 그렇다고 했을 때 택배 기사와 배달부는 과실이 없는 것일까 ?
아 복잡하다. 사실 택배 기사가 물건 흘려서 물건 못 받을 뻔 했다는 건 상당히 기분나쁜 일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