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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11/01/13 01:50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눈이 내렸던 어느 날. 사실 나는 전날 눈이 올 거라는 예보를 보고 오후까지 자버렸기 때문에 하루 종일 눈이 내렸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창문을 열었을 때 본 온통 하얀 광경을 통해 그랬겠거니, 하고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요기거리가 시장함을 달래준지도 꽤 시간이 지났던 터라 나는 저녁 식사를 해결하러 밖으로 나가야했다. 눈은 이미 그쳐 있었기에 나갈 결심을 굳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지내고 있는 건물과 맞은 편 건물 사이의 좁은 길을 지나 또 다른 골목으로 나가야한다. 창밖으로 보였던 풍경처럼 새하얀 눈들로 온갖 사물들이 덮혀 있었지만 시선 아래쪽의 검은 무늬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길게 이어진 빗금 무늬로 무늬의 중심에서부터 왼쪽 아래로, 다시 중심에서 오른쪽 아래로 그렇게 내 발치에서부터 저 골목길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고 검은 무늬 끝에는 빗자루질 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골목길로 향하는 도중에 보니 왜소한 체구의 사람이다.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으며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추운 날씨니 당연한 차림이었다. 아직도 골목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기에 허리를 숙이고 천천히 빗질을 하고 있었는데 모자 밑으로 흘러내려 온 머리칼을 보고 여성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곧은 머릿결과 드세지 않은 손동작, 가지런한 발모음에서 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세들어 사는 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은 이 동네의 특성상 건물주일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자기 방 앞이라고 길을 쓸고 있을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행인들은 모자나 우산을 쓰고 바쁘게 집으로 향하고 있었고 이전에 본 발자국과 타이어 자국들은 희미하게 자신의 자취를 지우고 있었다. 나 또한 아침거리와 간식 등을 산 다음 집으로 터벅터벅, 쌓인 눈에 자국을 남기며 꽤 긴 걸음을 걸었다. 골목을 올라 건물 앞 길로 방향을 트는 순간 아까의 무늬는 온데간데없고 불규칙적인 발자국만이 남아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의 것인지 쌓인 눈을 어쩔 줄 몰라하며 급하게 발을 옮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 또한 그 발자국을 하나씩, 따라 밟으며 건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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