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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7일 _해당되는 글 1건
05/10/27   넋두리 (12)

넋두리
단상 | 05/10/27 01:15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휴학을 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이면 아는 사실이다. 현재는 모바일 게임 제작이 한창 막바지에 들어섰는데, 게임이 완성되어서 사람들이 다운받기까지는 상당한 과정을 거친다.

1. 게임을 만든다(기획서를 먼저 통신사에 제출하고 만드는 경우도 있다).
2. 1차 검수를 받는다.
3. 통과되지 못하면 검수단의 의견을 반영, 수정해서 2차 검수를 받는다.
4. 여기서도 통과되지 못하면 또 수정해서 3차 검수를 받는다.
5. SKT의 경우 3차까지 있는 걸로 알고 있고, 3차에서 떨어지면 그 게임으로는 6개월 간 검수를 받지 못한다(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현재 만들고 있는 게임은 4번을 진행 중이다. 오늘 2차 검수 결과가 통보되어 왔다. 1차 때보다 점수가 떨어져서 회의가 있었다. 나는 뒤에서 듣기만 했지만...

SKT의 경우는 30명의 민간인 테스트단이 평가를 하는데, 각각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서 평가를 쓴다. 이 결과를 보면 참 가관이다. 특정 건물을 찾지 못해서 '건물을 찾을 수가 없어서 불편했습니다'라거나(건물 앞에 간판으로 다 쓰여져 있다), 도움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진행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진행이 힘들었습니다'라든지, 어려운 말을 쓰려고 노력하면서 맞춤법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말로 무작정 까내리기만 한다든가...

휴대폰이라는 특성상, 게임 개발에는 제약점이 너무 많다. 일단 왼쪽의 화면 크기(120*146 픽셀)를 보자. 여기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대사나 그림을 많이 넣고 싶어도 화면이 작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여러 번 누르는 것을 유저들은 싫어한다) 선택지의 문항이 길어지면 난감해진다. 큰 폰도 있으나 여러 폰에서 돌리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폰을 기준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KTF의 많은 폰에 게임을 올리기 위해서 BREW 1.0.2를 쓰고 있다. BREW 2.0이 나오고 더 많은 기능을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SKT의 경우에는 GVM(java 기반)을 사용하는데, 파일을 열면 그것을 모두 메모리에 올린다. 만약 그림이나 텍스트같은 리소스들을 모두 한 파일에 넣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게임이 좀 커서 리소스 파일이 300kb에 육박한다(일반 PC에서는 있으나 없으나한 용량이다). 하지만 메모리가 400kb밖에 안 되는 폰에서는 리소스를 로드하다가 폰이 죽는다. 메모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림도 많이 넣고 싶고, 대사도 많이 넣고 싶다. 아니, 최소한 필요한 것만 넣으려고 해도 폰이라는 환경은 그것을 힘들게 한다. 최대한 이미지나 대사를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거나 아예 조그마한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데 개발자의 입장으로서는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도 게임 뽀대나게 만들고 싶은데 폰이 그걸 허락을 안 해준다고. 근데 그걸 가지고 우리한테 트집을 잡고 그러면 안 되지...

위의 이미지에서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했었다'라고 썼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지금 우리가 제작 중인 게임은 2차 검수에서 탈락했다. 한창 일하다가 잠깐 쉬려고 나왔는데 그래픽 디자이너분께서도 나오셨다.

나: 지금 뭐래요 ?
디자이너분(앞으로 '디'): 한창 회의 중이시죠 뭐.
나: 에휴... 검수단같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가 이 고생이네요.
디: 그러게요. 제가 예전에 있던 회사에선 안 그랬는데.
나: 그럼요 ?
디: 예전 회사 사장님께서 SKT 이사급의 지위에 계셨어요. 그래서 검수 탈락하면 전화 한 통 해서 바로 통과시키고 그랬는데... 역시 세상은 빽이 있어야 하나봐요. 그래서 1년에 SKT, KTF, LGT 다 합쳐서 게임 8, 9개씩 출시하고 그랬는데...
나: ...

우리는 제대로 테스트도 안 해줘서(개중에는 테스트 마감날에 20분 하고 발로 쓴듯한 평가도 보였다) 계속 기획안 바꾸고 개발자들 삽질 늘어나고 그러는데 그런 회사는 빽으로 바로 처리를 한다고 생각하니 좀 우울했다.

그래 항상 세상이 공평한 것만은 아니겠지...

한 놈이 세 놈 잡고 그럴 수도 있을테고


믿었던 전우가 갑자기 나에게 총구를 겨눌 수도 있을테고


하지만 이런 재미난 이벤트들도 있으니까 살 수 있는 거겠지



세상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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