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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초 마지막 발표
일기 | 04/12/15 23:01
오늘 사진의 기초 마지막 발표를 했다.
자신이 어떤 주제를 정하고 그것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것이다.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이는데, 역시나 첫 번째 어려운 것은 주제의 선정이고 그 다음은 선정한 주제를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찍는 것, 나머지는 찍은 것 중에서 사진을 고르는 작업이다.

이번 학기에는 신공학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다른 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갈 엄두도 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마지막 발표의 주제를 '신공학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라고 정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참 잘 찍어 오더라. 어떤 사진을 보면 '이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팍 드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이 투영된 사진을 보는 것도 참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텐데 이 사람은 이런 것을 보고 있구나... 하는 것들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름이 얼마나 색을 잘 재현해 내는가, 렌즈의 선예도가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은 관심사에서 좀 멀어졌다. 단순히 시선 그 자체에 더 비중을 두고 사진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현상이나 인화에도 비중을 조금 덜 두고 있기는 한데 이건 좀 아쉬울 때가 많다. 마지막 출력물인 인화물의 상태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중 하나가 현상/인화 과정이니까...

잡설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나는 이번 학기 중에 찍은 신공학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골라냈고, 그것을 충무로 포토피아에서 8*10 사이즈로 인화를 했다.

여기서부터는 발표 상황.

(사진을 칠판에 일렬로 붙여 놓고)
나: 안녕하세요 컴퓨터공학부 정희동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신공학관에 대해서 찍었습니다. 지난 셀프 과제 발표 때도 말씀드렸었던 것 같은데, 제가 사진을 찍을 때는 제 눈 앞에 보이는 영상들을 즐겨 찍습니다. 굳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찍는 행위는 잘 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이번 학기에 집에서 자는 보내는 시간보다 신공학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고, 자연스럽게 신공학관 사진이 많아졌습니다. 별 다른 설명을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아, 이 중에서 빼고 싶은 사진들이 몇 장 있는데 제가 본 것들을 보여드린다는 차원에서 그냥 붙여 놓았습니다.

선생님: 무슨 사진을 빼고 싶은데 ? 한 번 빼 봐.

나: (두 장을 슥슥 뺀다)

선생님: 그래 바로 그거야. 그걸 빼고 나니까 사진들이 전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

나: 으음 이걸 보시면(뺀 사진 중의 하나를 손에 쥐고) 여기 난간에 까치가 한 마리 앉아 있거든요. 아침 7시쯤부터 301동을 날아다니는데... 매일 그게 보이니까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건(다른 한 장) 제가 제일 자주 지내는 곳(302동 NT실)이라서 찍었고요. 좀 더 설명을 드리자면 이 사진은(사진 하나를 칠판에서 떼어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져가며) 302동에서 밤을 새고 아침에 밖에 나갔는데 보이는 풍경을 찍은 사진입니다. 여기 이렇게 63빌딩이 아침 노을을 받아서 혼자 빨갛게 빛나는 사진인데... 신공학관에 있으면 이런 것도 볼 수 있지요. 제가 찍어온 것들은 제 시각이고, 여기 계시는 다른 분들도 신공학관에 많이 계실텐데 다른 분들의 의견도 좀 듣고 싶네요.

학생1: 저도 신공학관에 살고 있지만 평소에 보던 그런 게 아니네요. 그리고 저 왼쪽에서 두 번째랑 세 번째 사진, 신공학관에 저렇게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때가 있나요 ?

나: 이 쪽이 지금 남쪽이거든요 ? 아마 12시나 1시쯤인 걸로 생각되네요.

선생님: 지금 사진들이 굉장히 좋아요. 여기 난간에 손만 보이는 사진 있죠 ? 굉장히 차가운 시각인데, 그 안에 뜨거운 시선이 들어 있다고나 할까. 요즘 현대 사진의 가장 주류를 이루고 있는 그런 종류의 사진이에요.

나: 이 사진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 사람들이 이렇게 앉아 있고 화장실 표시의 사람, 비상구 표시의 사람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 보여서 찍었습니다.

선생님: 이것 봐요.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다 보고 있다는 거예요. 혹시 필름 뭐 썼어요 ?

나: 이 63빌딩은 후지 프로비아고요, 나머지는 전부 코닥 골드 200입니다.

선생님: 자, 코닥 골드로도 이런 사진이 나와요. 카메라는 ?

나: 손바닥보다 더 작은 롤라이35로 전부 찍었습니다.

그 다음 것들은 기억이 별로 안 나서 패스.


마지막 발표 잘 한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다. 다른 사람들 발표 중에는 "저 정도라면 사진학과 4학년 학생 정도 수준의 사진이다."라는 말씀까지 하셨으니... 그런데 나는 별로 실감이 안 난다. 좀 더 많이 찍고 그래야겠다. 요즘은 죄다 사진을 롤라이로 찍는다. 디지털 카메라는 진짜 단순한 기록용이랄까... 시험지를 찍어서 전공학술부에 올린다든가 할 때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열심히 찍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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