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  세계탐방  |  옆집소식  |  방명록  |  RSS  |  관리자
어떤 종강
일기 | 10/06/18 16:20
확실히 이상한 아침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아니 사실 아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정오가 훨씬 넘어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분명 9시에 일람을 듣고 일어났지만 9시부터 5분 간격으로 울린 알람이 마지막으로 울려 9시 30분이라는 시간을 확인한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몇 번이나 그 때의 선잠에서 깼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렇게 늦게까지 잘 요량이었다면 왜 애초에 알람을 꺼버리고 푹 자지 않았는지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왜 휴일마다 반복하는 건지 생각해 봐도 어쩔 수가 없었다. 별 일이 없는 한 이 사람은 또 이 짓거리를 휴일 아침마다 반복할 것이다.

무엇이 이상한지 생각했다. 오랜만에 자기 방에서 잠을 잤다는 것 자체가 첫 번째 이유였다. 요 한 달간은 학교에서 잔 적이 더 많았고 심지어 마지막엔 4박 5일을 학교에서 지내기도 했다. 물론 고양이 밥 주러 왕복 3시간 30분을 들여 한 번 왔다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눈을 떴는데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예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숙제 제출 할 것도 있었고 수업 관련으로 메일도 써야 했다. 하지만 숙제는 이미 다 해 놓아서 말 그대로 제출만 하면 되는 것이었고 메일도 그냥 편하게 보내면 되는 거라서 전혀 부담이 없었다. 그러니까 기한이 있는 일이 전부 없어진 것인데 학교 다닌지 얼마나 되었다고 매일같이 무언가 할 일이 있고 쫓기는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자와 같이 사는 고양이 둘 중 큰 녀석이 요즘 잘 때마다 위로 올라와 턱하니 앉곤 한다.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거운 것만 빼면 나쁠 거 없다고 생각했다. 날로 무거워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조금 들긴 했지만 곧 잠들어버리니 일어나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요즘은 올라와서 점점 앞발로 목을 지그시 누르는데 설마 이 자식이 날 죽일 셈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 밤 살인미수가 일어나고 있는 방이라고 생각하면 섬뜩하기 짝이 없지만 이 역시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리니 별 문제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밤을 보내며 피로에 쩔어 있으면 이 녀석마저도 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심지어 어제 밤에는 근처로 다가오지도 않아서 섭섭했지만 이부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이불이 다량의 토사물의 흔적으로 얼룩져 있는 걸 본 순간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것도 이불 한 장도 아니고 두 장 씩이나.
관련글(트랙백) | 댓글(18)

[PREV] | 1 | 2 | 3 | 4 | 5 | 6 | [NEXT]
bassist.'s nazono blog


no shovels, no gain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소개
음악
단상
일기
사진
영화
린과 케이의 이야기
World of Warcraft
 최근에 올라 온 글
+ tumblr (8)
+ 돈과 권력 (4)
+ 반복학습 (7)
+ 주차 (4)
+ 사춘기? (6)
+ 업무 단상 (5)
+ Life and Time - 타인의 의.. (2)
+ 의사 선생님 (2)
+ 8 mile (2)
+ 혼자 밥 먹기 (6)
 최근에 달린 댓글
+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
 08/30 - 비밀 댓글
+ 성지순례합니다
 03/11 - ntopia
+ 성지순례합니다
 11/16 - erniea
+ 아니 이보시오 이게 누..
 07/27 - bassist.
+ 지난 번에 오프에서 만..
 07/27 - bassist.
+ 얼마전 종로에서 술을..
 07/08 - 나다
+ 내 웹호스팅 계정의 갱..
 02/08 - withonion
+ 흑흑... 옮기고 싶은데..
 02/03 - bassist.
+ 리플도 트랙백도 스팸..
 02/03 - bassist.
+ 그 또한 맞는 말이오
 02/03 - bassist.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글 보관함
 링크사이트
 방문자 집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