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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일기 |
06/03/0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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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글이 올라갈 시점에서는 어제가 되겠지만) 린을 수술시키기 위해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눈꺼풀 안쪽에 털이 많이 나 있어서 각막이 손상되고 있었는데 그 상태를 조금이라도 지연시켜보고자 해서 우선 안검(눈꺼풀)수술을 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내가 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9시 30분까지 가기로 했었는데 10시에 도착했다.
2층 진료실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결국 수술을 시키기로 했다. 난 오늘 수술을 할 줄 알았는데 다음 주 월요일 8시 30분까지 데리고 오라고 했다. 오늘은 엑스레이를 찍고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10시 30분쯤부터 바깥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쯤 끝나냐고 물으니까 지금 바로 시작해서 금방 끝난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린을 데리고 1층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2층에서 검사를 하는 것 같던데 안고 간 여자 대학원생 분이 아래로 급하게 뛰어내려 와서 큰 기계를 가지고 2층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걸 보았다. 그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다렸는데 금방 끝난다는 검사는 12시가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결국 12시가 넘어서 2층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하는 소리가 큰 일이 생겼댄다. 검사를 하기 위해서 주사를 놓자마자 애가 쇼크로 심박 정지 현상을 일으켰다면서. 그래서 지금 심장 마사지도 하고 있는데 심박이 잠깐 돌아왔다가 한참 멈췄다가 그러고 있다고. 그리고 지금은 심박이 뛰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까 2층으로 급하게 가지고 올라간 기계가 아마 그것이리라. 그 말을 듣고도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나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었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수술실로 가 보니 린이 수술대에 누워 있고 6~7명의 대학원생(인턴 ?)들이 모두 붙어 있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봤는데 심장의 크기도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서 반이나 작았다.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눈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애가 너무 잘 뛰어다니고 놀기도 잘 놀길래 나는 그저 건강하구나 하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줄은 전혀 몰랐다. 사람은 깜짝 놀라면 그 충격을 뇌가 감당하지 못해 기절을 하고 심한 경우는 심장 마비를 일으킨다고 한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처음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을 완전히 잃은 개를 데리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우리 린은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 정도는 아니니 참 다행이다. 앞으로 잘 보살펴 줘야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린은 그렇게 죽어버렸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결국 연구 기증을 하기로 했다. 의사가 너무 미안해 하면서 다른 고양이라도 데려갈 수 있도록 하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존재의 가치는 다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편으로는 그 생각이 좀 괘씸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배려하겠다고 그런 말을 한 것일테니 뭐라고 할 수는 없었고 그냥 됐다고만 했다. 논문을 써서 저널에 올라가면 그거나 한 부 받기로 했다. 온갖 학술 용어들이 난무하는 의학 논문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 턱은 없지만 그거라도 받아두지 않으면 내가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나오면서 생각해 봤는데, 이렇게 된 이상 누구에게도 잘못을 물어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린은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데 잘잘못을 따진다고 해서 린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돌이켜 보니 어쩌면 운명이라는 게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순 없지만 너무 슬펐다. 결국 병원을 나와서 학교 체육관 벽을 치며 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겨우 태어난지 4개월 좀 넘었을 뿐이고 페코와 좀 친해지려던 차에 이렇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아직 네게 줄 밥도 많이 남았고 나에겐 장난감으로 놀아줄 시간도 많았고 네가 좀 크면 집 앞의 놀이터에도 데려가서 모래밭에서 뛰 놀게 해 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데려오지 않았으면, 내가 오늘 더 늦게 일어나서 아예 병원에 갈 수 없었다면, 주사를 놓을 때 내가 옆에 있었다면... 이런 생각이 들어도 결국 미안함에 의해서 나 자신을 책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병원을 나와 한참을 울다가 회사로 향하는 나 자신에게 구역질이 났다. 너는 갔는데 나는 오늘도 먹고 살기 위해서 이렇게 발버둥을 치는구나. 하지만 나는 살아있으니 온갖 생지랄을 해서라도 살아야하지 않겠니.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다. 네게는 네 인생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준다는 말이냐...
집에 돌아왔을 때 린이 먹던 사료 그릇을 보니 '얘가 집에 있었으면 지금 그릇이 많이 비어 있겠지'하는 생각과 덜 어질러진 모래 화장실 근처를 보니 '얘가 있었으면 냄새도 더 났겠고 모래도 더 많이 튀었겠지'하는 생각과 빗자루로 바닥을 쓰니 '얘가 있었으면 지금 빗자루 근처에 와서 냄새를 맡으며 호기심에 앞발로 빗자루를 툭툭 치다가 내가 빗자루로 톡 치면 놀라서 창가로 뛰어 가겠지'하는 생각... 몇 장 남지 않은 사진으로밖에 너를 볼 수가 없다는 점이 너무 슬프다. 너를 데리고 와 내 방에 살게한 사람으로서 너무 미안해... 다음 생이 있다면 그 때는 부디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한 삶을 누리며 오래오래 살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그치질 않는구나. 너는 눈물샘도 거의 발달하지 않아 안구가 건조한데 내 이 눈물이 너무나 사치스럽게 느껴져... 근데 슬프잖아 빌어먹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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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ist.'s nazono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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