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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벗다
단상 |
10/10/18 01:59
오늘 실습실에 앉아서 모기를 몇 마리 잡았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에는 학교 화장실 세면대에서 정말 기괴한 광경을 봤다. 수십 마리의 모기가 세면대 여기저기에 생긴 물웅덩이에 전부 코를 박고 죽어 있는 게 아닌가. 오늘 내게 잡힌 놈들도 전부 비실비실하고 먹은 건 없는지 배는 전부 허옇게 떠 있었다. 입술 아래를 비롯해서 물렸을 때는 그렇게 치가 떨리다가 이제 약해빠지니 영양가없는 연민의 감정이 어디선가 새어 나온다.
밤 늦게 실습실을 나섰다. 밤이 늦었다고는 했지만 아직 막차 시간은 되지 않았던 터라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건물을 나와 귀에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틀었는데 좀 있으니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손으로 훔치기도 번거로워서 안경을 벗어 그냥 가방에 넣어버리고 내리막길을 터덜터덜 내려왔다. 오오 숨이 턱턱 막히는 스네어 트레몰로 연타. 존경합니다 카시쿠라 형.
저 앞에 보이는 불그스름한 것은 보도블럭의 끄트머리요 길 위의 희여멀건 한 격자선은 횡단보도이리라. 계속 걸어내려 왔다. 저기서 나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형상은 사람일 것이고 저 앞에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는 것은 차량 진입 방지봉들이겠지.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빨간 것은 오토바이인지 휴지통인지 뭔지 알 길이 없었다. 가로등만은 눈이 시리게 밝았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도서관 근처에 고드름처럼 길 좌우로 늘어선 것들은 대체 내 눈이 잘못됐나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그냥 등이 길어서 그런 것이었다. 나는 촌놈이다. 가로등의 불빛은 모더니티 그 자체더만. 그 유려한 일자라인이란.
다시 큰 길로 나와 인도를 걸으니 십여미터 앞에 남녀가 있다. 저 어정쩡한 거리를 보아하니 커플은 아닌 듯 싶었다. 정문 근처의 버스 정류장 지붕 기둥을 통과하면서 왼쪽에 서 있던 여자는 오른쪽으로 같이 지나가고 싶었던 것 같지만 남자는 그냥 걸어가서 둘은 사이에 기둥을 놓고 갈라졌다가 다시 붙었다. 방금의 거리를 유지한 채로.
정문을 지나고 집 쪽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큰 도로 저 멀리 형형 색색의 둥그런 불빛들이 늘어서 있다. 한 가지 색이 아닌 것이 특이했다. 연두색 초록색 녹두색 주황색 노란색 분홍색 빨간색... 어릴 적에 100원으로 살 수 있었던 '신호등'이라는 사탕이 저렇게 생겼었지. 오톨도톨한 표면마저도 내 흐리멍텅한 눈으로 재현되는구나 이리도 선명하게.
실습실에서 집까지는 40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눈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정확히는 초점을 맞출래야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눈이 풀어진 채로 있었던 거지만. 매사에 힘이 필요 이상 들어가 있는 느낌인데 이렇게라도 힘을 빼고 있으니 안락했다. 잘 때 빼고는 항상 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에 안경집을 가지고 다니면서 안경을 꼈다 벗었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그들은 나만큼 눈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왜 고등학교 때까지 몰랐을까.
남들은 하루에도 수십 턴씩 문명을 하는데 나도 이렇게 한 턴만 쉬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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