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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20분 기상. 우리가 힘든 여행을 했다는 사실은 수면시간만 봐도 알 수가 있다. 평소에도 저렇게 살라면 참 힘들겠지.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는데, 무려 자명종이 울리기 전에 일어난 것이었다. '나도 이럴 때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조금 놀랐다. 일어나서 애들을 하나하나 깨웠는데 이미 내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늦을 일은 없겠지 하고 애들이 뒹굴뒹굴하기만 하고 일어나질 않았다. 그 중에서도 형순이랑 경식이가 제일 늦게 일어났는데 경식이가 좀 더 게을렀다.
밥솥으로 밥을 했는데 한국 밥솥과는 좀 달라서 생소했다. 결국은 밥이 떡이 되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아마도 너구리 라면을 이 때 처음 먹어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너구리'하면 다들 알던데... 하긴 집에서는 안성탕면만 먹었으니까.
오늘은 교토에 가기로 한 날이다.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가면 되겠지...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코니텔 할아버지께서 더 좋은 길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아무래도 일본에 살고 계시니 할아버지 말씀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쾌속 급행을 타기까지는 시행착오가 좀 있었다. 우리가 가진 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건지도 궁금했고(하지만 그냥 타는 건데 무슨 수로 일일이 패스를 확인한단 말인가 ? 하는 생각이 드니 그냥 타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이것저것 와서 뭘 타면 빠를지도 잘 모르겠었고...
왼쪽은 역에서 본 여학생. 겨울이었기에 코트를 입고 있었다. 가방에 인형을 매달고 책을 읽고 있는 평범한 모습.
학생들이 많았다. 여기는 아마도 난바역... 우리나라보다 좋아보이는 이유는 열차가 여유로워서 그런 걸까. 학생들 가방이 우리나라처럼 어깨에 매는 게 아니라 손으로 들고 다니는 그런 가방이다.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좀 묘했다. 기차를 갈아타야 했는데 우물쭈물 하다가 눈앞에서 교토행 특급을 놓쳤다. 남는 시간에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이것저것 둘러보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두 줄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모습이 참 놀라웠다. 우리나라는 줄 서라고 그래도 그냥 선로에서 떨어져 있다가 우르르 몰려서 들어가는데...
깔끔한 조종석 내부. '쾌속 급행'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이건 무슨 전대물의 옐로우처럼 보여서 좀 웃겼다.
교토역에 도착했다. 역과 쇼핑몰이 같이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어찌어찌 찾아갔는데,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다. 휴지를 사기 위해서는 100엔짜리 동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용석도 그렇고 나도 100엔짜리가 없어서 이용석이 60엔과 내 40엔을 모아서 100엔을 만들기로 했다. 신발 가게로 들어가서 바꿔 달라고 했는데 손 안의 10엔들을 못 보고 그냥 100엔을 달라고 하는 줄 알고 무조건 안 된다고만 했다. 거지인 줄 알았나 보다 [...] 그래서 근처의 편의점에 가서 100엔으로 바꿨다.
나와서 어렵게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큰 역이라 그런지 버스 타는 것도 굉장히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산쥬산겐도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형식이 절이었다. 옆으로 굉장히 긴 건물이었는데, 이 안에서 활쏘기 대회도 했다고 한다 [...] 신을 벗고 절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하는데 난방같은 게 없으니 발이 굉장히 시려웠다.
운세뽑기를 했는데 형순이 혼자만 '소길'이 나왔다. 이게 소'길'이라고 해서 결코 좋은 게 아니었다. 이거 조심해라 저거 조심해라 적혀 있던데 참 보기도 무서울 정도였으니...
결국 이런 데 묶는 수밖에 없었다.
나와서 귀무덤과 도요쿠니 신사를 봤다. 귀무덤에 영어 설명이 없는 건 왠지 외국인들에게 그런 걸 알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평범한 동네에 그런 게 있다는 것도 좀 신기했다. 하긴 그런 건 경주도 마찬가지니 뭐.
초등학생들이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반바지를 입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보니 엄청 신기한 거였다. 춥지 않았을까.
이건 깔끔한 전화부스. 모양도 이쁘고 깨끗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저렇게 예쁘게 만들어 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기요미즈테라(청수사)로 갈 차례였다. 걸어가면 30분 정도만에 도착했을지도 모를 길을 버스 타고 간다고 삽질해서 1시간 이상 걸렸다. 고조자카를 지나 양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기요미즈테라가 보였다. 상당히 큰 절이었다. 책자를 보니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해서 그 쪽으로 가 보았다.
알고 보니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출구였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했다. 나오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공짜로 들어가느냐, 300엔을 내고 당당히 들어가느냐... 우리는 가난했다. 다들 나오고 있는데 거슬러 올라가면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눈 마주칠 때마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올라가면서 보니 우리같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다들 한국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더 가니 물을 마시는 곳이 나왔다. 운을 좋게 해 준대나. 유명한 장소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매우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곳을 지나쳐서 전망대같은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우리가 들어가려는 곳이 또 출구라서 들어가려면 표를 보여줘야했다. 형순이랑 경식이가 무사통과를 했다. 이 놈들은 늦잠자고 게으름 부리면서 이런 운들은 좋아요... 나는 표를 보여달라는 말(오 킷뿌오 미세떼 구다사이 !)을 무시하고 -_- ; 안으로 돌진했다.
이 장면은 아마 일본어 교과서에도 자주 나오던 거라고 생각한다. 다들 한 번쯤 본 광경이라고 생각. 이 안에 90Kg짜리 무쇠지팡이가 있다고 하는데 이용석이랑 같이 들어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진짜 꿈쩍도 안 하더라.
다시 내려가서 물을 마셨다. 책에 쓰여져 있던 것과 표지판의 설명이 달라서 우리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봤지만 역시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또 말이 달랐다. 나는 제일 오른쪽의 지혜를 마셨다. 왜 이걸 선택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오른쪽으로 올라왔고, 내려갈 때는 왼쪽 방향으로 내려왔다. 각종 떡(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집이 있던데 시식이 가능했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모든 떡집에 들어가서 조금씩 집어 먹고 나왔다. 점심을 못 먹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 '야쯔하시'라고 불렀던 것 같다. 하쯔야시라고 쓰여져 있는 것도 있었던 것 같고...
긴가쿠지로 갔다. 이 절은 그냥 예쁜 정원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들어가는 입구도 잘 꾸며져 있었고, 안쪽을 봐도 호수에 정원에 모래로 만든 조형정원에... 일본의 절은 세워진 시기나 용도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절은 대나무와 이끼가 많았다. 길 좌우로 세워진 난간도 대나무로 되어 있었고... 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던지라 교토 시내가 좀 보였다.
나와서 철학의 길을 걸었다. 동네가 너무 예뻤다. 진짜 조그마한 동네였다. 애들도 놀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모습들이 참 좋게 보였다.
버스를 타고 기온으로 갔다. 어렵게 '곰보에'라는 가게를 찾아서 키츠네돈부리를 먹었다.
900엔이었고 꽤나 맛있었다. 하긴 우리가 엄청 굶주려 있었기에 더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밥을 먹고 우메다로 직행. 아침 때보다 훨씬 빨랐다(45분). 고베로 갈 열차 시간을 알아보려 했는데 우메다에는 내일 고베로 갈 열차가 없는 듯해서 한신으로 갔다. 지하가 무슨 대운동장처럼 엄청 넓었다. 우리나라는 보통 옆으로 길쭉하기만 한데... 우리의 짧은 일본어를 역무원들이 잘 알아들어서 어째어째 시간을 알아냈다. 미도스지를 타고 난바로... 만두를 샀다. 보스커피를 모으기 위해 커피도 하나 뽑았고. 만두와 커피를 먹으며 내일의 계획을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