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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4일 _해당되는 글 1건
09/10/04   추석 (6)

추석
일기 | 09/10/04 05:41
7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잠들었는데 정작 일어난 건 7시 50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 커뮤니티 소모임 대문 바꾼답시고 휘말려서 3시에 잔 것 치곤 용케 일어났지 그래. 서울역에서 열차가 10시 20분 출발인데 버스를 타고 서울역까지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추석이고 행여나 도로가 밀릴까봐 최대한 일찍 출발을 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잠깐 조니까 고속도로는 어느 새 끝나 있고 반포를 달리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도 차가 정말 없었다. 평소에도 이 정도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9시 30분... '아 너무 일찍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음악 들으면서 사진 좀 찍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간다.




사람이 적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않았다. 해마다 귀성객이 줄어드는데다 신종 플루 영향도 좀 있으리라.

열차 에 올라 책을 읽는데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음악을 너무 크게 듣고 있어서 달리는 중에도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저기요" 하면서 손을 툭툭 치니까 이어폰을 뺐다.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그러는데 조금만 줄여주시겠어요?" 뭐 결국 나도 음악이나 들으면서 졸았다. 전날 늦게 잔 탓도 있고 차량에서 앉기만 하면 자는 버릇 때문에 대전까지는 잘 잤는데 어째 그 때부터는 잠이 안 왔다. 졸다가 못 내리면 부산까지 간다는 걱정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심을 복어집에 가서 탕을 먹었는데 그럭저럭 맛있었다. 찬을 맛보니 확실히 경상도 음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나쁘지는 않은 맛. 아버지가 맥주 시키길래 두 잔 마셨는데 맵고 뜨거운 탕과 알콜 때문에 땀이 뻘뻘 났다. 그리고 대낮부터 시뻘개지는 나의 얼굴... -_- 그대로 마트에 가서 장을 봤는데 빡빡머리가 얼굴 벌개가지고 카트 끌고 장 보고 있는 모습이 참 가관이었을 것 같다.

집에 들어가니 먹을 게 참 많았는데 찰떡도 맛있었고 사과도 맛있었고 곡물 볶은 것도 맛있었고... 아 쓰고 있는 내가 다 배고프네. 이번 추석부터는 할머니댁에서 지내질 않게 되어 부산 삼촌댁이 우리 집에 오신다고 했다. 곧 오실텐데 자고 있을 수도 없고 좀 버티다 도착한 거 보고 침대로 가서 자버렸다. 저녁 먹을 때쯤 일어나서 간만에 진수성찬을 맛봤는데 이렇게 1주일만 먹으면 정말로 돼지가 될 것만 같았다(...)

식사 후에 또 이거저거 먹으면서 술을 계속 먹었는데 정말로 알콜로 얼룩진 하루였다.

포항까지 내려온 마당에 맨날 가던 방파제나 가자 싶어서 자정쯤에 집에서 나왔다.




시간도 시간이고 추석 전날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긴 했지만... 개중엔 주민등록증이나 나왔을까 싶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뭐. 기타를 들고 나온 사람도 있었는데 내가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튜닝을 하고 있었고 방파제에서 돌아올 때는 책을 펴 놓고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었다.




내 기억엔 이런 거 없었는데 언제 또 이런 길을 만들고 이런 조명을 설치했는지 모르겠다. 쉬는 때 없이 돌아가는 포항제철이 멀리 보인다. 저기야말로 진정한 불야성이다.




오리온자리가 보였다. 한겨울엔 자정이면 하늘 정 가운데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는 녀석인데 괜히 반가웠다. 날씨가 추워지니 이제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방파제 끝에는 조그마한 빨간 빛을 내는 등대가 있다. 사실 내가 이 장소에 처음 온 때는 수능 D-100이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수능 백일에는 항상 술을 먹곤 했는데 어째 이 날엔 학교에서도 일찍 보내줬던 것 같다. 토요일이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별로 뭐 그런 건 상관없겠지. 반 전체가 몰려가서 덜렁 소주만 마시고 취해서는 어깨 동무를 하고 교가를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까이서 본 등대는 그 때 봤을 때보다 훨씬 외관이 깨끗했는데 과연 그 동안 몇 번이나 페인트칠을 했을까. 7년 전엔 방파제 돌이 여기까지 쌓여 있지 않았고 반대쪽에 새로 세운 담도 없었다. 내가 모르는 새 모든 게 이렇게 조금씩 변해간다.




시야가 가리는 게 괜히 심술이 나서 방파제 위로 올라갔다. 돌 새로 보이는 틈이 천리 낭떠러지처럼 느껴져서 많이 움직이진 못했다. 지겨운 포항제철이었지만 그래도 올라온 김에 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산 커피를 마시며 바닷바람을 쐬었다. 해변에서 나는 바다 냄새랑은 또 다르다. 해변에는 각종 쓰레기와 고인 물, 해초 썩은 냄새 등 별로 좋을 거 없이 불쾌한 비린내일 뿐이지만 여기까지 바다 쪽으로 들어오면 그런 냄새는 별로 안 난다.




돌아가는 길 또한 재밌다. 바다쪽에서 해안을 바라 볼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몇 번이나 될까? 뭐 여기 오면 항상 볼 수 있긴 하지만. 게다가 조명들이 바다로 흘러내려 너울거리는 모습을 보면 꽤 환상적이다. 마치 크로마토그래피같기도 하고.




바다로 갈 때도 집으로 돌아올 때도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얘네들은 길에서 주운 먹이를 가지고 잽싸게 위로 올라가 먹고 있었다. 그래 추석인데 잘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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