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5일 오후 9시 (+관악타임)
독어독문학과의 임홍배 교수님께서 <브레히트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주제로 점거 중인 본부 1층 로비에서 1시간 가량 강의를 해주셨다. 강의는 브레히트의 생애에 대해서 짧게 설명을 한 이후에 시 몇 편을 읽어주시며 설명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브레히트는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다. '서푼짜리 오페라'와 '서푼짜리 소설'등으로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형식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기존의 연극은 재현(물론 상징주의와 표현주의 등이 출현하면서 그 개념은 거부되었지만)을 통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는데 그 때문에 관객에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고 보고, '거리 두기'와 '낯설게 하기'를 중요한 개념으로 내세워 적극적인 사회 참여로서의 서사극에 대해서 역설했다.
...이러니 나찌가 브레히트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사회주의자의 딱지 때문에 매카시즘의 압력으로 동독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그 이후에도 동독의 사회주의가 관료주의로 물들고 노동자 봉기 운동을 진압한 것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브레히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이게 시인지 신문의 기고문인지 토황소격문같은 글인지 아리송하다. 알려고하지 않는 부유층을 비판하며 노동자 계급에게 배움을 종용하기도 하고 자신이 왜 그러한 시들을 쓰는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서 직접 설명하기도 한다. 화가의 끔찍한 말(das Entsetzen über die Reden des Anstreichers)이 자신을 책상으로 이끈다는 것이다(여기서 Anstreicher는 히틀러를 의미한다).
마지막 시는 임홍배 선생님께서 직접 번역하신 '아, 어떻게 우리가 한 떨기 장미를 기약할 것인가?(Ach, wie sollen wir die kleine Rose buchen?)였는데, 지금까지 소개된 시와는 다른 의미로 와닿았다. 한글로 번역하신 글귀를 감히 올려본다.
아, 어떻게 우리가 한 떨기 장미를 기약하겠는가?
갑자기 검붉은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아, 우리가 장미꽃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 때 장미꽃은 그렇게 피어 있었다.
장미가 그렇게 피기 전에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장미가 그렇게 피었을 때는 거의 믿겨지지 않았다.
아, 시작한 적도 없는 일이 목적지에 이르렀구나.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그렇지 아니한가?
어떤 일에 있어 시작하기 전에 그 일에 대해 예상을 하고 계획을 세워 생각대로 일을 만들어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매우 많다. '아 오늘이 음력으로 보름이고 날씨는 이러하니까 이 시간에 남동쪽 어느께를 바라다 보면 어느 정도 높이에서 보름달이 어느 정도 밝기로 빛나고 있을 거야'라며 보진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고 신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놀라움이나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인간성, 갑자기 찾아온 인연... 목표를 정하고 행하는 일에도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라면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도 자만하지 않을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