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찬밥처럼 방에 담겨'라는 표현을 읽자마자 어두운 방구석에 엎드려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고 있었던 어린 날이 떠올랐다. 동시에 블럭으로 내 키만한 탑을 만들었던 일도 짝퉁 레고를 가지고 가지고 놀았던 일도 생각났고 어머니께서 냉장고 냉동실에 귀중품을 넣어놨던 일도 생각이 났다(이건 대체 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모님을 걱정하지도 않았고 혼자 어두운 방에 있는 게 무섭다거나 하지도 않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