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내 벼룩시장에 책 수십 권을 권당 천원에 파는 분이 계셔서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집어 왔다. 계단을 통해 내 자리로 올라오면서 앞부분을 펴서 읽었는데 이런 문구가 있었다.
'냉장의 세계에서 본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부패한 것인가'
강렬한 그 한 문장에 시합 시작 3초만에 TKO 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오늘 인터넷 서점을 들여다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방에 가면 그냥 책을 조금 읽어보다가 책 구입을 결정할 수 있었을텐데, 난들 서점에 가고 싶지 않아서 여기에서 찬사를 가장한 광고와 한 줄짜리 서평들을 보면서 책을 가늠하는 게 아닌데. 내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기꺼이 서점에 가서 - 심지어 서점으로 향하는 발걸음마저도 설렐 수 있을텐데 - 책을 천천히 둘러 보고 근처의 책도 같이 보면서 그렇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즐거울 수 있을텐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다. 아니, 뺏겨버렸다.
물론 누군가는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온라인 구매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바쁨을 자처한 이들도 있겠지만 단 하나의 문장이나 대사, 단 한 마디의 멜로디, 단 하나의 광채에서 온 마음을 뺏기고 그것을 손에 넣는 즐거움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마냥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