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게 있어 음악은 가장 큰 흥분제이면서 진정제인 동시에 각성제이자 진통제인 것 같다. 고등학교 자습 시간에 항상 이어폰을 달고 살았던 것도 싫었던 공부를 꾸역꾸역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문 잠그고 이어폰을 가방에서 꺼내기 때문에 잘 일어나지는 않는 일이지만, 이어폰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기분이 언짢아지고 불안해지기까지 하는 걸 보면 음악을 달고 사는 건 거의 약에 절어 사는 그런 느낌이다. 술 먹고 모든 감각이 다 사라지고 시각이랑 청각만 남으면 진짜 환상적인데 3D 아이맥스로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운동을 할 때도 빠른 비트의 베이스 드럼 쿵 소리와 스네어 탕탕 소리를 들으면 정말 고통을 잊고 유산소 운동을 지속할 수 있다. 유쾌하지 않은 출근길 2호선 지하철 안조차도 음악을 들으면 어느 정도 괜찮다. 몸이 아주 피곤하거나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을 때도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어느 정도 괜찮아진다.
그렇다면 내가 아직까지도 음악 듣는다고 못 자는 건 새벽까지 게시판(디씨 등)에서 노는 사람들이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 이미지/영상을 보거나 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극을 통한 쾌락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이 노래 한 번만 더 듣고 자야지'하는 것은 '아 던전 이거 하나만 돌고 자야지' 혹은 '아 이번 화만 보고 자야지'와 동일하다.
나는 시각보다 청각을 잃는 게 더 두렵다. 내 눈은 아마 계속 심하게 나빠질 것이다. 나이가 들면 근시는 약해진다고 하는데 내 눈은 별로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직사광선이 비치는 곳에 있으면 눈이 버티질 못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매년 눈이 나빠지는 게 안경을 맞출 때마다 느껴진다. 그리고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들에 비해서 시각적 자극을 비교적 흐릿한 인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시각적 자극에 둔감해서 그런 건지, 물론 추측이다.
평소에 큰 볼륨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 탓도 있지만 아직 귀는 어렸을 때와 비교해서도 멀쩡한 것 같고 소리가 큰 공연을 듣고 나서도 귀울림이나 다른 증상이 없이 멀쩡했던 걸 보면 아직 괜찮을 것 같다. 다행이다.
모네는 시각을 잃어가면서 수련을 그렸는데, 청각을 잃어가면서 새로운 사운드 텍스쳐를 만들 수도 있는 걸까? |